Y 성희롱 사건은 전형적인 미술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다 : 사건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 요구


가해자가 창작을 그만두기만 하면 사건이 해결되는가?

2020년 6월 19일 경향신문(https://news.khan.kr/tJc3)과 동아일보 기사(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00619/101587127/1)는 미술그룹 믹스라이스의 Y 가 2019년 기획 및 운영감독을 맡은 서울문화재단의 ‘충정로 청년예술청 조성사업(이하 ‘콜렉티브 충정로’)’ 준비 과정 중 20대 참여예술인에게 성희롱을 가한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미술계 Y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는 입장문을 통해 성희롱 사건 내막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Y 는 페이스북을 통해 기사 속 성희롱을 한 예술인이 자신임을 시인하며 앞으로 창작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Y 가 창작을 그만두기만 하면 사건이 해결되는가? 이 사건은 문화예술계의 예비예술인이나 여성 작가들의 성희롱 피해를 구제하는 제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2017년부터 성평등한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계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징계 근거를 만드는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을 요구하였으나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사건을 조사하고 피해자를 지원해야 할 서울문화재단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술인복지재단)은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제도적으로 사건을 해결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피해자는 법적 위험을 무릅쓰고 언론을 통한 공론화를 선택한 것이다.

Y 는 2000년대부터 대안공간 풀을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진행하며 저변을 확대해 나갔으며, 이주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처우와 인권 문제를 알리는 작업으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Y 는 문화연대에서 활동한 경력 등을 바탕으로 예술 분야에서 심사위원, 자문위원 등을 다수 맡아왔으며 특히 예술인파견지원사업 등 예술인복지재단에 초기부터 관여한 예술인으로 문화예술계에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2019년에는 서울문화재단의 ‘콜렉티브 충정로’의 예술감독을 맡게 된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진보적 예술론, 예술가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가 정작 자신과 함께 활동하는 예술계 약자인 여성 예비예술인의 인권을 침해해온 기만적인 행태를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지겹게 봐왔다. 과연 가해자가 창작을 그만두는 것으로 예술계 성폭력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Y 성희롱 사건은 전형적인 미술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다.

이번에 밝혀진 Y 의 성희롱 행위는 전형적인 미술계 성폭력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위력에 의한 미술계 성폭력 유형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전시 기회를 빌미로 지망생이나 막 미술계에 진입한 여성 신진작가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강제추행을 하는 경우

  • 둘째,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망생에게 아르바이트 혹은 일자리를 제안하며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강제추행을 하는 경우

  • 셋째, 실기 점수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미술 교육계에서 교사나 교수가 학생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가하는 경우

  • 넷째, 기성세대와 기성문화에 대항하기 위해서 성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논리로 성관계를 강요하는 경우

Y 는 아르바이트를 빌미로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업무 자리에서 성관계를 제안하며 그것이 예술의 필요조건인 양 피해자를 우롱했고, 피해자는 결국 프로젝트 참여를 포기했다. 가해자는 자신의 성희롱 발언을 “솔직하고 거친 성적 자율성 발언"으로 해명했는데, 그것은 공적인 업무 영역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발언이었으며 결국 피해자의 예술활동 기회를 잃게 한 노동권 침해행위이다. 콜렉티브 충정로 개관 프로젝트 기획단은 6월 20일 입장문에서 ”피해자의 상황이 ‘콜렉티브 충정로’에 속해 지금껏 활동하고 있는 참여예술인들의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낍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Y 의 성희롱이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한 예술창작 환경을 위협하는 행위이므로 공적인 조치가 필요했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가해자를 키운 것은 누구인가?

2016년 #미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당시 SNS 를 통해 예비예술인에게 접근하여 일을 제안하거나 작품을 봐준다며 만남을 종용하여 성희롱을 가한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났지만 똑같은 양상의 성희롱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미술계 성폭력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2016년 이후 미술계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Y 가 동인으로 있던 아트 스페이스 풀의 경우, 2000년대부터 풀에서 일어났던 다수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자체적으로 신고를 받았다. 풀은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기회가 있었으나 미온적으로 조치했다. 이렇게 미술계가 성폭력 가해자에게 온정적으로 대처하는 사이 가해자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갔고, 피해는 계속 되었다. Y 는 예술계뿐만 아니라 문화연대에서도 사회예술네트워크의 멤버로 오랫동안 활동해오며 문화운동권이나 예술정책 전문가들과도 관계를 맺어왔다.

Y 는 피해자의 문제 제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예술인의 권리 보장이나 공공예술의 역할에 대해 스피커 역할을 했고 각종 기금의 심사위원이 되었다. 예술계가 마련해준 Y 의 권력은 예비예술인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성희롱, 성폭력 가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며 가해자의 자리를 보장해 준 자들은 누구인가? 가해자가 영향력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는 일은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도록 작용하는 배경이 된다.

‘미술계 Y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는 Y 가 10년이 넘도록 다수의 여성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행사해왔다고 밝히며,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10여 년 전에 있었던 피해가 지금도 반복되는 것처럼, 앞으로도 또 다른 여성들이 예술계에서 활동할 용기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예술계 내에서 성평등을 위한 노력이 확산되고, 정의롭고 평등한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Y 와 함께 활동한 예술가들, 예술계의 여러 조직과 기관이 반성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동일한 피해는 발생할 것이다.



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이 사건을 통해 서울문화재단, 서울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계 성폭력 문제에 무책임하게 대처해왔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Y 의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에 따르면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시는 성폭력 사건이 계약 기간 내에 발생했더라도 Y 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권한이 없다며 사건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서울문화재단 김종휘 대표이사는 진정이 접수된 후인데도 Y 를 사석에서 만났고, 결국 조사 권한이 서울시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로 이관되었다. 이후 서울시에서도 이미 계약이 해지된 상태라 조사할 수 없다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서울문화재단은 계약기간이 종료되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주관하는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해결할 책임이 있으며, 서울시는 공적 기금으로 운영되는 서울문화재단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다. 하지만 서울문화재단은 공식적인 조사와 조치 없이 가해자를 감독직에서 면하는 것으로 끝냈다. 콜렉티브 충정로에 참여한 예술인들에게 예술감독의 하차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나 사후대책은 없었다.

Y 의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피해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상담과 법률자문을 받았지만, 사건 가해자 및 피해자 모두 프리랜서라 직장 내 성희롱을 적용할 수 없으니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예술인복지재단에 피해 신고를 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Y 가 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지원사업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심사를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불공정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예술인을 지원하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신고를 받은 사건의 가해자를 심사위원에 위촉한 일은 결국 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 성폭력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안이하게 대처해왔는지 말해준다. 또한 문화예술계 미투 이후 2019년 5월에 신설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전담부서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은 예술인복지재단, 콘텐츠성평등센터 보라, 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성희롱·성폭력 신고상담에 대한 총괄 관리 책임이 있었지만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예술인복지재단의 사건 처리과정에서 드러났다.

3년 전인 2017년에 여성예술인연대(AWA)는 “모든 예술기관에 성폭력 비리와 관련된 채용 규정(심사위원 포함) 및 징계규정 강화를 요구합니다.”라는 요구사항이 포함된 문화예술인 2095명의 성명서를 서울문화재단과 예술인복지재단에도 보낸 바 있다. 여성문화예술연합 또한 동일한 요구사항을 문체부 및 산하 기관에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문체부 성희롱·성폭력 예방대책위원회는 1차 권고(2018년 7월), 2차 권고(2018년 11월), 4차 권고(2019년 6 월)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이전에 예술인의 성희롱을 불공정행위로 규정하여 사건처리 시스템을 만들라고 문체부 장관에게 권고하였지만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2월,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이전의 법적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책으로 “모든 예술인에 대한 성희롱이 예술창작활동을 곤란하게 하는 불공정행위에 해당함을 관련 지침에 명시할 것, 성희롱을 이유로 하는 불공정행위를 심사하기 위하여 ‘(가칭)문화예술 성희롱·성폭력 심의위원회’를 신설할 것, 신고사건의 조사와 처리를 위한 전담부서를 두거나 전담인력을 확충할 것, 성희롱 관련 형사처벌과 과태료 처분을 받은 자도 보조사업자 선정에서 제외할 것” 등을 문체부 장관에게 권고했지만, 문체부는 지금까지 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국회가 예술인권리보장법안을 처리하여 프리랜서 예술인의 성희롱 규제의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지만, 문체부는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는 핑계만 계속했다. 문체부가 진작 예방대책위와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했다면 이번 성희롱 사건은 제도적 해결절차를 밟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미술계 성폭력을 끝장내야 한다. 이 사건을 Y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성희롱을 지속적으로 발생하게끔 방조하고 눈을 감아준 미술계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당신의 침묵이 피해자를 양산해왔다. 더 이상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가해자를 두둔해서는 안된다. 가해자를 포용할 자리에 피해자의 권리회복을 위한 고민과 실천이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는 Y 의 성희롱 피해자와 대책위에 연대하며 다음을 요구한다.

1. 서울문화재단에 요구한다.
  • 콜렉티브 충정로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 및 대처방식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라.

  • 본 사건 및 추가 피해사례에 대하여 철저히 조사하고, 조사 내용을 공개하라.

  • 지원사업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충처리체계를 만들고, 유사 사건 발생 시 절차를 적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라.

  • 재발 방지를 위해 성평등 교육을 시행하고 조직 문화를 관리하라.

  • 심사위원, 예술감독 선정 시 윤리성과 성비를 고려하고 기준을 강화하여 공개하라.

2. 서울시에 요구한다.
  • 서울문화재단의 사건 해결과 재발방지 대책 수행 여부를 책임지고 관리하라.

  • 유사사건 이관 시 사건이 해결될 수 있도록 규정을 정비하라.

  • 서울시 산하 예술기관의 고충처리체계와 실효성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라.

3.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요구한다.
  • 신고가 들어온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경위를 조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라.

  • Y 에 의한 추가 피해사례에 대하여 조사하고, 조사 내용을 공개하라.

  •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충처리체계를 만들고, 사건 발생 시 절차를 적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라.

  • 성폭력 법률상담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과 예술계 특수성 이해를 갖춘 전문가를 채용하라.

  • 심사위원 선정 시 윤리성과 성비를 고려하고 기준을 강화하여 공개하라.

4. 문화체육관광부에 요구한다.
  •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라 문화예술 성희롱·성폭력 심의위원회를 즉각 신설하라.

  •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콘텐츠성평등센터 보라, 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신고상담 사건이 해결되는지 관리·감독하고, 사각지대인 경우 규정을 정비하여 제도를 개선하라.

  • 지역문화재단에서 사건 발생시 해결절차를 만들도록 지원하고 필요한 입법을 추진하라.

5. 21대 국회에 요구한다.
  • 국회는 ‘예술인의지위및권리보장에관한법률’을 속히 통과시켜 사각지대에 놓인 프리랜서 예술인의 성희롱 성폭력 피해를 구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라.

  • ‘예술인의지위및권리보장에관한법률’ 발의안에 예비예술인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하라.

6. 미술계에 요구한다.
  • 본 사건을 성적인 농담으로 취급하면서 피해자를 색출하거나 험담하는 등의 2차 가해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 성희롱을 목격하고도 제지하지 않았던 동료들, 신고를 받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미술 관계자들은 책임을 인정하고 통렬히 반성하라.

  • 미술관과 전시공간은 #미술계_내_행동강령(http://safezoneforus.com/)을 수용하여 전시 기획과 참여작가 섭외, 프로젝트 진행이 안전한 환경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라.



2020년 6월 22일

여성문화예술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