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진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사진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여성문화예술연합(WACA) 성명서>

‘한국 사진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2018년 5월 15일, 한 여성 유투버와 다수의 여성이 피팅모델 촬영을 빌미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였다. 한국 사회에는 이미 2016년 #사진계_내_성폭력 반대 운동과 2018년 #MeToo 운동을 통해 사진계에 만연한 성폭력 사건이 알려진 바 있으며, 유명 사진작가 로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두 달 가까이 경찰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진작가들의 성폭력 가해 사건과 사진 동호회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피해자의 용기 덕분이다. 사진계 성폭력은 예술 활동을 빌미로 피사체에 폭력을 행사하고, 이에 대한 기록을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협박했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여성문화예술연합’과 ‘사진계 성폭력 감시자 연대’는 성폭력을 행해온 사진작가와 사진 애호가 그리고 여성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묵인해온 수많은 침묵의 방관자들을 규탄한다.

2016년 10월, #사진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통해 사진계의 성폭력 문제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러한 고발 이후 1년이 넘도록 가해 지목인에 대한 처벌이나 사진계 내 성폭력에 관한 적합한 징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2018년 #MeToo 운동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3월 유명 사진작가 로타가 #MeToo 운동을 통해 다수의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고발되었지만, 아직도 기소 여부가 결정 나지 않았다. 또한, 제자들을 상대로 신체접촉, 언어폭력 등 일상적인 성폭력을 행사해온 사진작가 배병우를 비롯한 성폭력을 저지른 사진작가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 공개 사과는 순수 사진계뿐만 아니라 상업 사진계에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6년 한 사진 잡지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한 응답자 385명 중 과반수가 20대 여성이었다. 성폭력 가해자는 상사나 선배, 교수 및 강사와 같은 사진 촬영자가 대부분이었고, 피해자는 일반인 모델이나 전문 모델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촬영자와 모델 간에 분명히 존재하는 위계질서로 인한 수직적 관계에서 성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진작가와 모델의 사이에는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라는 위계가 형성된다. 특히 사진작가가 명성을 가진 자라면 모델의 직업적 생존에 크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해도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주로 폐쇄된 공간에서 일대일로 진행되는 모델 촬영의 특성 탓에, 사진계 성폭력을 외부로 알리거나 피해자 간의 연대를 만드는 일은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 된다. 사진계라는 좁은 생태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공포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계약서도 작성하기 어려운 부당한 노동조건과 성폭력이라는 두 가지 폭력에 모델들은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진계의 성폭력은 심각한 디지털 성범죄를 수반하고 양산한다. 여성의 동의 없이 나체를 촬영하거나 공유하는 것은 ‘카메라등이용촬영죄’에 해당하는 중범죄이다. 사진작가와 사진 애호가 중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여성의 신체를 거리낌 없이 훼손하는 한국 사진계의 형국이 ‘몰카’로 야기되는 강간문화의 토양인 것이다.

이러한 사진계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부는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빌어 피해자들의 호소를 막는다. 표현의 자유는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을 때만 성립한다.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얻는 결과물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혐오이자 폭력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성폭력을 저지르고 그것을 예술이라 우겨서는 안 된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성폭력을 저지른 것은 단순히 성범죄이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사진계 성폭력 실태에 대해 알린 피해자들은 오히려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무고죄 등의 보복성 고소에 위협당하고 있다. 우리는 사진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을 온전히 지지하며, 피해자들이 홀로 고통을 견디는 상황을 타파하고자 정부 부처 및 수사 기관, 언론, 예술가, 시민들에게 다음의 내용을 요청하고자 한다.

  1. 사진작가, 상업 사진계, 사진동호회의 성폭력 범행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촉구한다. 수사기관은 심각한 2차 피해로부터 피해자를 반드시 보호해야 할 것이다.

  2. 언론은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여성의 신상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며, 피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2차 가해를 당장 중지하여야 한다.

  3. 문화체육관광부는 성폭력을 저지른 사진작가의 예술 기금 수혜와 전시를 제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며, 성폭력을 저지른 개인 프리랜서와 그가 소속된 업체에 대한 제재도 만들어야 한다.

  4. 사진작가 및 사진 애호가가 모델을 고용할 때는 정당한 보수를 지급해야 하며, 노출 수위, 촬영 시간, 추후 활용 범위, 이미지 재사용 횟수 등이 명시된 표준계약서를 업계에서 의무화해야 한다.

  5.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사진계를 이루는 개인들의 의식 개선과 실천이 필요하다. 피해자들이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일상과 작업에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만 한다. 사진계 내 만연한 성폭력의 근절과 2차 가해 예방을 위해 공정한 처벌 절차 및 구성원들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18년 5월 19일


여성문화예술연합

사진계 성폭력 감시자 연대